솔직히 말해서, 지환과 만났던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부모님은 황혼이혼을 하네마네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뒤늦은 코인 투자 실패로 6년간 모은 돈을 허공에 날린 상태였다. 평소 코인 투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포지션이었기에 나는 그걸 누구랑 상담도 못 했다. "하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평생 한번도 그런 적이 없...
대원이, 승훈이 새끼랑 간만에 날씨가 좋길래 편의점 앞에 앉아 술을 잔뜩 마셨다. 얼마 전에 결혼한 대원이 새끼는 8시가 되자마자 "슬슬 가야겠네" 하면서 일어났고, 나랑 승훈이는 한잔씩 더했다. 간만에 만취했다. "와 코가 얼큰하다 야. 아우 지금 몇 시지? 가야겄다" "몰라, 야 뭘 집에 가. 야야, 걍 우리 동네잖아. 걍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내일 ...
모텔의 조명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어두운데 눈은 또 아프다. 카드키를 꽂고 방 안으로 들어서니 흔한 모텔 방향제의 냄새가 마음을 묘하게 검붉게 만든다. "여기 근데 좀 별루다" 현아는 찝찝한 표정으로 모텔 방 안을 둘러본다. 그러게, 아까의 그 신축 모텔이 딱 좋아 보이는데 여긴 어째 좀 쌈마이 티가 많이 난다. 근데 어쩌랴. 방이 없는걸. 이럴 땐 극단...
"사회초년생이나 알바 시절에, 혹은 마음에 드는 직장에서 딱히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던 기억 한번쯤은 있을겁니다. 솔직히 그런 기억이 아예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좀 문제 있는 분이구요." 세형의 말에 다들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있었지. "그리고 일에 슬슬 능숙해지고 효율이 올라왔을 무렵에, 다른 사람이 설렁설렁 일하는걸 보고 답답하...
나는 거의 19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플레이 뒤에야 VR헬멧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눈이 아프다 못해 뒷골이 욱씬 쑤실 정도의 통증이 몰려왔다. 뒷목과 허리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후' 절망감이 몰려왔다. 어처구니 없지만 '청춘을 바쳐가며' 플레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게임에서 난 지금 모든 것을 날릴 위기에 처해있다. 내 손으로 키워낸 최강의 반...
내가 지난 13년간 밤낮 없이 즐기며 인생을 바친 엄청난 스케일의 판타지 VR게임 '엠퍼러'. 현실에서는 부모 등골 빨아먹는 쓰레기일진정, 게임 속에서만큼은 '마왕을 무찌르고, 대륙을 통일하였으며, 엄청난 정치력으로 역사상 최강의 대제국을 만들어 낸 위대한 황제'인 나다. '그런데' 한 게임을 너무 오랫동안 플레이 하다보니 근래에 와서는 권태가 생겨, 결국...
"폐하, 기침하시지요" 코를 스치는 향긋하면서도 매혹적인 레드 라일락의 익숙한 향기. 순간 지난 며칠간 뜨거운 밤을 보낸 몇 십에 이르는 후궁과 무희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르륵 스쳐 지나갔지만, 기억하건데 이 향기의 주인은 그녀들이 아니다. "…레오라" 마왕 페르사스를 무찌르는 거대한 모험을 함께하며 수백 번도 넘게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긴 동료이자, 황후인...
도박에서 돈을 잃기 시작하면 입술이 제일 먼저 마른다. 열심히 혓바닥으로 아랫 입술을 적셔보지만 이윽고 건조함은 명치까지 내려온다. 마치 역류성 식도염이 다시 도진 것처럼 식도 끝이 타는 듯한 느낌이 시작된다. 분명히 통증인데 도파민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분비되기 시작하는지, 기분이 묘하게 좋다. 꼴릿하다고 해야하나. 머리가 멍해지고 새하얀 무언가가 뇌에 ...
다음은 PC에서 실행 가능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제안입니다. 게임의 가칭은 '리얼연애시뮬레이터(이하 R.Y.S로 호칭)'로 하며, 이는 향후 수정될 수 있습니다. R.Y.S는 비교적 친숙한 기존 연애 시뮬레이션 틀 안에 현실적 요소와 정교한 데이터 기반 캐릭터 간 상호작용을 추가하여, 대화형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틀을 리얼 시뮬레이션으로 전환하고자 ...
전날 밤, 때아닌 전 여친 이야기로 모처럼 캠핑장에 같이 온 해린이는 그렇게 혼자 집에 가버렸다. 이 년은 기승전전여친이다. 뭔 지 거슬리는 건수만 있다하면 결국에 전 여친 이야기로 시비를 거는 것이다. 나도 야마가 돌아서 빡 욕을 박아버렸다. 그러자 콧방귀를 뀐 그녀는 언제나의 대사를 뱉었다. "나 그냥 집에 갈래" "야 여기가 어딘데. 어떻게 갈건데?"...
처음 그것은 아주 작은, 마치 싹조차 트지 않은 채 굳게 입을 다문 씨앗과 같았다. 비록 당시에는 아주 작았지만 나는 놈의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었고, 놈이 깨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항상 조심스레 행동했고, 가끔 충격이 오더라도 절대로 녀석만큼은 깨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어느 날, 아주 작은 실수와 착각에 의해 허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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